2014년 1월 5일 일요일

르네상스 꽃 피운 메디치家… 한국엔 어디 없나



산 로렌초 성당과 메디치, 피렌체에 갑부 많았지만 학문과 예술 발달에 돈 쓴 메디치家만…
그 중 가장 크게 공헌한, 코시모와 로렌초의 무덤도 메디치家의 다른 사람 처럼산 로렌초…
창조, 말로만 이뤄지진 않아, 혁신적 사고를 수용할 열린 마음을 갖고 전폭적 지원 아끼지…

지난 10년 사이에 우리에게 가장 친숙해진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창조(創造)'일 것이다. 지겨울 정도로 '창조'는 우리 일상에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창조'라는 단어는 앞으로 더 많이 듣게 될 것이고, '창조'에 익숙해지지 않은 사람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무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사실 역사는 언제나 창조를 통해 발전해 왔다. 오늘날은 지식의 개방과 확산으로 그러한 사실이 널리 알려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창조 시대는 언제였을까? 서구(西歐)는 기원전 5세기 전후의 고대 그리스 시대,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 18~19세기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 시대를 꼽을 수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언제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는 르네상스 시대의 모태, 피렌체를 찾아가려 한다.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예술품이고 창조의 산물이다. 박물관에 들어가 있어야 할 작품이 노천에 지천으로 깔렸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순례자'가 수백만 명 찾아오는 게 당연하다. 그들은 언제나 피렌체의 중심인 대성당 두오모(Duomo)와 르네상스의 보고(寶庫)인 우피치 미술관을 제일 먼저 찾는다. 그곳에서 순례자들은 브루넬레스키,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천재들의 작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피렌체의 위대함에 감동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순례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두오모와 우피치에서 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 여기서 걸음을 멈추면 르네상스의 정수를 보았다고 얘기할 수 없고, 르네상스라는 위대한 창조 시대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 수 없다.

르네상스의 비밀이 숨겨진 곳까지는 두오모와 우피치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곳은 바로 산 로렌초(San Lorenzo) 성당이다. 성당은 크게 본당과 메디치 예배당, 메디치 도서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메디치(Medici)라는 이름이 많이 들어간 이유는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생전에는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고, 사후에는 이곳에 묻혔기 때문이다.

메디치는 르네상스라는 화려하고 혁명적이었던 한 시대와 동전의 양면처럼 인식되는 가문의 이름이다. 그들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13세기였다. 상업으로 출발한 이 가문은 금융업을 통해 거부(巨富)를 쌓았다. 14~15세기 일이다. 그러나 당대 유럽에 그만한 부를 소유한 가문은 메디치뿐만이 아니었다. 교황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랑스와 영국의 왕, 부르고뉴 공작(오늘날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해당하는 지역을 다스렸던 프랑스의 대귀족)은 물론이고 피렌체에만도 메디치에 필적하는 부자가 많았다.

그런데 왜 역사는 메디치만을 기억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메디치만이 부(富)를 제대로 썼기 때문이다. 메디치는 축적한 부 대부분을 학문과 예술 발전에 쏟아부었다. 한 사람, 한 세대만의 일이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어서 가문 구성원 대부분이 그러했다. 이건 돈이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손들에게 교육을 통해 학문과 예술의 중요성을 가르쳐 사랑하도록 했고, 혁신적 사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추도록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결과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보티첼리 등 셀 수 없이 많은 예술가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고, 폴리치아노, 피치노, 피코 델라 미란돌라 같은 탁월한 인문주의자들이 메디치 가문 주변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우피치가 자랑하는 소장품인 동시에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작품인 보티첼리의 '봄의 귀환'과 '비너스의 탄생'은 메디치 가문의 주문으로 만들어졌다.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에게 교육과 작품 활동 기회를 준 것도 메디치였다.

그러나 개인적 후원은 메디치가 했던 일 중 일부에 불과하다. 메디치 가문은 동방으로 사람을 보내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유럽에서 사라졌던 수없이 많은 서책을 사왔고, 도서관을 지어 보관했다. 도서관은 지식인과 예술가, 시민에게 개방됐다. 예술이 만개했고, 지식이 전파됐으며, 혁신과 창조를 위한 경쟁이 피렌체 사회에서는 일상이 됐다. 르네상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메디치 가문 중에서도 르네상스에 가장 크게 공헌한 두 사람은 '국부(國父)'라 불리는 코시모와 '위대한 자'로 추앙받는 로렌초다. 이 두 사람의 마지막 안식처 역시 다른 메디치와 마찬가지로 산 로렌초 성당이다. 코시모의 무덤은 본당에, 로렌초의 무덤은 신성물실에 안치돼 있다. 무덤은 두 사람이 역사에 끼친 공로와 명성에 비하면 소박하다 못해 허름하다. 그러나 실망스럽지는 않다. 차분하게 둘러보면 그 어떤 천재의 작품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위대한 정신이 무덤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창조는 절대 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제2의 메디치가 되겠노라 결연히 나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에 21세기 르네상스를 가져다줄 제2의 메디치는 과연 존재할까? 있다면 그는 누구일까?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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