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일 토요일

과학기술 발전은 제로(0)에서 시작했다

제로의 DNA를 찾아서
21세기의 화두는 창의성이다. 모방만으로는 경쟁력에서 이길 수 없다. 따라서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에 사이언스타임즈는 고등과학원(KIAS)과 공동으로 제로의 기원과 역사에 얽힌 미스터리를 이야기로 풀어보는 ‘제로의 DNA를 찾아서’를 선보인다. [편집자 註]
수학은 모든 과학의 기본이다. 그래서 수학을 과학의 여왕이라고도 한다. 숫자 가운데서는 제로(0)가 으뜸이다. 오늘날 강대국들이 새롭게 경쟁하고 있는 우주과학을 가능하게 한 것도 제로 덕분이다. 파인먼 교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제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천의 얼굴과 만의 해학(諧謔)을 지닌 사람’.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가 아니라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고양자물리학의 최고봉에 섰던 리처드 파인만(Richard P. Feynman) 교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는 희극배우 뺨칠 정도의 해학을 펼쳐 보였다. 상황에 따라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임종 때까지도 그의 농담과 장난이 이어졌다.

천의 얼굴과 만의 해학, 리처드 파인만
▲ 양자역학의 최고봉에 있던 파인만은 그의 날카로운 해학으로 전설적인 인물로 꼽힐 정도다.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는 2004년 특집기사를 통해파인만을 ‘20세기를 변화시킨 위대한 혁신가’로 평했다.기사 내용은 이렇다.

“파인만의 전설은 1988년 사망 이후 3권의 자서전과 그가 남긴 그림과 글, 그리고 그의 해학들을 담아 책으로 펴낸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요’로 유명세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그의 인생관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죽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와중에 혼수상태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죽는 것도 참 피곤한 짓이군.’”

하루는 한 제자가 당시 중학생이었던 딸 미쉘을 보고 맘에 들어 “딸이 크면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파인만이 그 학생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자네 부모 중에 한 명은 남자고 다른 한 명은 여자겠지? 아니라면 설명을 해보게나.(Do you have one male and one female parent? If no, explain.)”

부모가 혹시 동성애 부부는 아닌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요절복통할 질문을 던지기 일쑤였다.

천문학수치보다 경제적 수치가 더 크지 않나요?
어느 날 양자물리학 강의시간에 파인만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서 가장 큰 숫자를 천문학적 숫자(astronomical number)라고 부릅니다만, 천문학적인 숫자보다 더 큰 숫자는 없을까요?”

자신 있게 나서는 학생이 없자 파인만이 답을 내놓았다.

“은하수에는 10의 11제곱이나 되는 많은 별이 있다고 합니다. 거대한 숫자입니다. 그러나 그 수는 천억 정도에 불과하죠. 미국의 재정적자보다 작은 숫자입니다! 우리는 그걸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불러왔습니다. 차라리 경제학적 숫자(financial number)라고 고쳐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수십조 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 정부의 무능함과 경제정책의 실패를 꼬집는 이야기다.

우주과학을 가능케 하다
이제는 방향을 돌려 작은 숫자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 수학은 가장 기본적인 기초과학으로 근대 과학기술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다. 그러한 수학의 중심에는 제로가 있다.
작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제로(0)’가 없었다면 현대 과학과 기술을 가능케 한 거대한 수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제로라는 개념이없었다면 모든 과학과 기술, 심지어 생명을 다루는 생물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필수적인 천문학적인 숫자들이등장할 수 있었을까?

우주과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공상과학에나 등장할 법한 우주여행이 10년 이내에 그 길이 열린다고 한다.돈 많은 유명인사 몇몇은 여행 목적으로 인공위성에 몸을 싣기도 했다.

이에 따라 우주경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달에 물이 발견되고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주경쟁은 우주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마저 보인다. 우주가 신세기의 서부개척지로 등장했다는 소식도 외신을 타고 전해온다. 바다 위 무인도처럼 누군가먼저 차지하면 임자가 된다는 것이다.

거대한 우주과학이 탄생한 데에는 천문학적인숫자가 큰 역할을 했다. 숫자 중에서도 ‘제로의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학과 철학의 바탕 마련한 제로(0)
무의 숫자, 제로(0). 그것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유(有)인가 무(無)인가? 존재인가 비존재인가? 철학적 사변의 소재가 되는 제로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 속에도 새롭고 신비로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제로는) 신성한 영혼이 머무는 훌륭하고 놀라운 피난처이자,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오고 가는 양서류와 같은 동물이다.(...a fine and wonderful refuge of the divine spirit – almost an amphibian between being and non-being.)"

근대 미분과 적분론을 확립한 유명한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W. von Leibniz)의 말이다. 제로는 수학과 철학의 중심이자 출발점이다.



천문학적 숫자의 근간이 된 제로
수학을 과학의 여왕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제로(0)가 으뜸이다. 오늘날 경쟁하고 있는 우주과학을 가능하게 한 것도 단연 제로다. 21세기의 화두는 창의성이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수학의 대중화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산실인 고등과학원(KIAS)과 공동으로 제로의 기원과 역사 등 이에 얽힌 미스터리를 이야기로 풀어보는 ‘제로의 DNA를 찾아서’를 선보인다. [편집자 註]
현란하고 거대한 규모의현대과학을 가능하게 한 ‘천문학적 숫자’는 얼마나 큰 숫자일까? 제로(0)에서 출발해 엄청나게 큰 천문학적 숫자로 발전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이번에는 ‘제로와 천문학적 숫자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천문학적 숫자는 절대적 개념 아니다
▲ 아마 제로만큼 우리의 일상생활에 파고 든 수도 없을 것이다. 사진은 미국의 한 체조클럽 회원들이 제로를 가장 인간적인 수(human number)로 정하고 모형을 만드는 장면이다.
국어사전은 천문학적 숫자를 ‘천문학에서 다루는 숫자’ 또는 ‘엄청난 크기의 숫자’로 정의하고 있다. 정확한 크기에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다만 무한한 우주를 연구하는데 필요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숫자를 지칭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천문학적 숫자가 정확한 수량으로 나타낼 수 있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닌 상대적인 개념이란 의미다. 또한 길이나 크기에 있어 대단한 수치를가리키는 ‘천문학적(天文學的, 또는 astronomical)’이라는 말이 어디에서 유래됐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결국 천문학적 숫자는엄청나게 큰 양이나 수를 어림잡아 표현할 때 사용한다. 그렇나 허망한 개념이 아닌 현실적인 크기를 지칭하는 방식이다.예를 들어 “1억은 천문학적 숫자가 아니며 1억 더하기 1부터가 천문학적 숫자”라고 말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라는 뜻이다.

추상적인 개념도 아니다
“저 남자 키가 상당히 크다”고 했을 때, 과연 몇 센티미터의 신장을 키가 큰 것으로 할지 명확하게 정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상당히 예쁜 여자”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신체 어느 부위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예쁘다고 할지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크다’, ‘예쁘다’ 등의 단어가 마냥 추상적이지는 않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표현할 때 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천문학적’이라는 의미도 좀 더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천문학에서 다루는 숫자의 규모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클 뿐이다.

어떤 이들은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인 약 1억5천만 킬로미터를 기준으로 천문학적 숫자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 크기를 넘어서면 ‘천문학적 숫자’로 부르자는 것이다.

천문단위 au는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

천문학적 숫자는 한편으로 모호한 표현이다. 지구와 태양까지 거리는 천문 단위(AU, astronomical unit)로 정확하게 쓰인다. 다시 말해서 1AU는 1억4천959만8천킬로미터다.

▲ 인뮤문명사와 함께한 학문은 바로 수학이다. 사변을 요하는 수학은 철학과 함께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의 수학문헌의 일부다.
국제천문연맹(IAU,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는 길이의 단위로 AU(또는 au)를 권하진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타원이기 때문에, 타원의 긴 반지름으로 계산한 정확한 값은 1au가 1천495억9천787만660미터다.

참고로 명왕성은 태양으로부터 39.5au, 목성 5.2au, 달은 지구로부터 0.0026au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참고로 1광년은 6만3천239.73au이고, 1파섹은 20만6천264.806au다.

IAU는 천문단위를 국제표준협회에 ISO 31-1로 등록해 특허를 획득했다. 대문자로 된 AU는 유명한 개인의 이름의 약자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소문자 au를 권하고 있다.


과장법으로 쓰이기도 하는 천문학적 숫자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만 해도 엄청나지만, 우주의 별들 사이의 거리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숫자가 너무 크다 보니 좀 줄여서 쓰려고 로그와 같은 기호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천문학에서나 사용되는 거대한 숫자를 일반인들이나 작가들이 문학이나 대화에서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천문학적인 숫자’다. 그러니 ‘정확히 얼마부터’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숫자가 나왔을 때 약간의 과장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천문학적 숫자의 크기와 관계 없이 보통은 수천억을 넘는 정도를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묘사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숫자가 등장하게 됐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거리 측정법으로는 이렇게 먼 거리를 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류가 예전 사람들에 비해 훨씬 넓은 차원의 우주를 알게 된 것은 새로운 기준과 자를 발견한 덕이다. 우주의 크기를 재는 데는 3가지 자가 쓰인다. 연주시차법, 케페이드 변광성의 주기를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허블 법칙을 이용하는 방법 등이다.

연주시차로 관측천문학 차원 높인 베셀

별까지의 거리를 최초로 정확히 측정해 관측천문학의 수준을 높인 프리드리히 베셀(Friedrich W. Bessel, 1784~1846)은 독일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별들의 목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프리드리히 베셀은 연주시차를 이용해 수 광년 이상 떨어진 별의 거리를 측정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 크기의 수치를 계산해 낸 것이다.
지구는 일년의 주기로 태양의 둘레를 공전하기 때문에, 지구에 위치한 관측자는 반년마다 태양의 반대쪽에서 별을 바라보게 된다. 아주 먼 곳에 있는 별까지의 거리는 지구의 공전 궤도 반지름에 비해 훨씬 크므로. 마치 지구의 공전에 의해 상대 위치가 거의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에 있는 별들은 조금 더 많이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마치 기차를 타고 달리며 먼 산을 보면 계속 같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마을이나 집들은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원리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먼 곳에 있는 별들을 배경으로 해서 가까이 있는 별들의 상대적 위치가 달라 보이는 정도을 측정하면 별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낼 수 있다.

지구 공전궤도의 반지름을 밑변으로 하고 별을 꼭지점으로 하는 직각 삼각형을 그렸을 때, 이 삼각형의 꼭지각을 ‘연주시차’라고 부른다. 우리는 지구의 공전궤도 거리를 알고 있으므로 연주시차만 측정하면 간단한 계산에 의해 별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다.

1초의 연주시차에 해당되는 거리를 1파섹(Parsec, pc)이라 부르며, 천문학에서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1파섹은 약 3.26광년 즉 빛이 3.26년 동안 가야 하는 먼 거리를 나타낸다

선원이 되려다가 천문학자의 길로 돌아서
선원이 되기 위해 기하학과 천문학 등 항해술의 기초과목을 공부하던 베셀은 결국 천문학에 커다란 매력을 느껴 천문학자가 되었다.

베셀은 연주시차를 이용하면 별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프라운호퍼(Fraunhofer)가 고안한 정밀 측각기를 이용해 태양계에서 11.2광년 떨어져 있으며 12번째로 가까운 별인 ‘백조자리 61번 별’의 연주시차를 최초로 측정해 거리 계산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구 공전궤도의 반지름에 비하면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도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연주시차는 아주 작은 값이 되어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알파 센타우리(α Centauri) 즉 센타우루스 자리의 알파성의 연주시차도 겨우 0.76초 밖에 되지 않는다.

오차를 감안하면 이 방법으로 별까지의 거리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한계는 100파섹 즉 약 300광년 정도밖에 안 된다. 태양에서 은하의 중심까지의 거리가 약 3만 광년임을 고려하면 매우 짧은 거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연주시차법의 발견 덕분에 별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시작한 것은 대단한 발전이다. 인간이 태양계라는 경계를 뛰어넘어 우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더 큰 우주의 거리를 재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자가 필요하다.
The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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