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일 토요일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


가스가 마사히토|살림Math
세기의 수학문제 풀고 명성은 거부한 사나이… 왜?

'푸앵카레 추측(Poincar? conjecture)'은 1904년 프랑스 수학자 푸앵카레가 처음 제기한 이래 100여 년 동안 누구도 풀지 못한 난제였다. 이 문제가 풀렸다는 뉴스를 대부분의 수학자가 믿지 않았을 정도이다. 세기의 난제를 푼 주인공은 40세의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Grigory Y. Perelman) 박사. 그에게 수학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필즈상이 수여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페렐만은 놀랍게도 필즈상 수상을 거부한다. 앞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얼굴이, 옆면에는 수상자 이름이 새겨지는 영광의 메달, 여기에 100만 달러의 상금까지 곁들여지는 필즈상을 거부하다니! 겨우 월급 500루블(약 22만원)을 받고 자신과 어머니의 생계를 지탱하는 가난한 수학자의 행동에 수학계는 다시 한 번 경악했다.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는 필즈상을 거부하고 은둔한 천재 수학자 페렐만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은이는 일본 공영방송(NHK)의 프로그램 전문 디렉터답게 페렐만의 직장 동료, 고등학교 은사 등을 집중 인터뷰하면서 그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조명한다. 또한 100여 년간 수학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푸앵카레 추측에 도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며, 푸앵카레 추측이 무엇인지, 수학 천재들이 펼친 지적 도전의 풍경과 의미를 생생하고 알차게 소개한다. 취재기 형식으로 펼쳐내는 모든 페이지가 마치 지은이의 생방송 카메라와 함께 현장에 있는 듯 실감난다.

푸앵카레 추측은 원래 이렇다. "단일연결인 3차원의 닫힌 다양체는 3차원 구와 위상동형이다(Every simply connected, closed 3-manifold is homeomorphic to the 3-sphere)". (58쪽) "쉽게 말해 밧줄을 매단 로켓을 3차원 공간인 우주로 쏘아 올려 우주를 한 바퀴 돌게 한 다음 다시 지구로 오게 한다. 그렇게 생긴 밧줄 고리를 회수할 수 있다면 우주는 둥글다고 말할 수 있다."(110쪽)

푸앵카레가 '위상기하학' 논문집 마지막에서 던진 이 추측은 수학적으로 우주의 모양과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사유다. 만일 우주가 둥글다면 우주 공간(3차원)을 똑바로 날아가면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고의 실마리였기 때문이다. 이는 지구가 둥글기에 지구 표면(2차원)을 똑바로 걸어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푸앵카레의 시도는 기존의 수학인 미분기하학과는 완전히 다른 위상기하학(topology)을 앞세워 우주의 모양과 형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포함해 모든 학문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위상기하학, 곧 토폴로지의 기초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토폴로지의 관점에서 고리 손잡이가 달린 찻잔과 구멍이 뚫린 도넛은 같다. 철골 구조의 에펠탑 또한 여러 개의 도넛을 쌓아올린 것과 마찬가지다. 토폴로지는 숫자나 수식을 앞세운 기존의 미분기하학과는 전혀 다르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유와 관점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페렐만은 왜 세기의 난제를 해결했으면서도 필즈상을 거부하고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교외의 숲에 은둔한 것일까. 프랑스 고등과학연구소의 미하일 그로모프 박사는 이러한 페렐만의 행동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는 불필요한 일은 철저히 버리고, 자신을 사회에서 완전히 차단시켜 문제에만 집중했습니다. 그의 순수성이 7년 동안 고독한 연구를 가능하게 했고, 동시에 필즈상을 거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업적을 평가할 때 순수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수학, 예술, 과학, 어디든 타락이 생기면 소멸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도 논리의 순수성이 일정 수준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붕괴할 것입니다. 의식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수학은 순수성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학문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무너지면 수학은 불가능합니다." (205쪽)

페렐만은 자신을 철저하게 수학의 세계에 빠져들게 함으로써 난제를 풀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이러한 경지를 맛본 이상 수학 외의 세계에 자신을 방치하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이러한 추측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실제로 이 책을 읽다 보면 페렐만을 비롯해 모든 천재 수학자들이 어떻게 수학이라는 언어로 세상을 파악하고, 자신의 내면과 맞서며 진리를 향해 다가가는지 알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어렵고 까다로울 뿐인 수학이 왜 아름다운 지적인 사유세계가 될 수 있는지, 왜 모든 인간 문명의 기초가 되는 추상의 체계인지 깨닫게 된다.

수학이 어떻게 물리학과 생물학, 철학 등 여러 학문과 연관되는지, 왜 강력한 사유의 도구가 되는지 자연스럽게 가르쳐 주는 책. 한 편의 흥미진진한 지적 다큐멘터리를 통해 수학자와 수학의 세계, 나아가 새로운 사고의 관점을 종횡무진 흡수해 보는 즐거운 책. 군데군데 어려운 곳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읽더라도 사고의 폭과 깊이가 바뀌는 책. 주어진 정답을 맞히는 수식이나 기존의 고정관념과 편견 등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는 우리의 노력이 좀 더 집중된다면, 진리 탐구의 과정은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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