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5일 수요일

생각하는 로봇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고려해 볼 것을 제안한다.”

앨런 튜링이 1950년에 발표한 ‘계산하는 기계와 지성’이라는 유명한 논문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인공지능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이다. 지성을 판단하는 척도로 잘 알려진 ‘튜링 테스트’ 또한 이 논문에서 등장했다. 위 논문은 이후 인공지능, 로보틱스, 기계학습의 기원이 됐다. 튜링의 제안은 현대 컴퓨터과학과 인공지능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우리는 언제쯤 생각하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까.



지성이란 무엇인가?


최근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서 등록된 사람만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탑재했다. 실제로는 잘 정해진 규
칙에 따라서 얼굴 정보를 추출하고, 등록된 정보와 비교하는 것이지만, 마치 전화기가 얼굴을 알아보는 것 같다. 스마트폰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생각하는 방법의 규칙은 어떻게 발견한 걸까.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삼단논법을 개발한 것도 그런 규칙을 찾고 싶어서였다. 삼단논법은 ‘사람은 모두 죽는다’와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에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문장의 단어들을 적당한 규칙에 따라 나열하면 새로운 정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발전하면서 마침내 ‘생각하는 기계’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17세기의 독일 철학자 고트프리드 라이프니츠는 적당한 추론 규칙을 따르면 인간의 모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기계를 만들려고 했다. 19세기 중엽 영국의 수학자 조지 불은 이러한 논리를 더욱 발전시켰다. 참 또는 거짓 여부를 알고 있는 문장을 연결했을 때, 연결된 문장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아내는 규칙을 정의한 것이다.

이런 추론 과정은 규칙에 의해 이뤄진다. 만일 적당한 규칙(알고리듬)이 있다면 자동 기계로 모든 문장의 참 또는 거짓을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알고리듬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자동 기계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시대는 튜링을 위해 한 가지 도전을 던졌다. 20세기 초 수학자 데이비드 힐베르트가 ‘결정 문제’라는 수학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파트 1 참고). 튜링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1937년 어떤 알고리듬이라도 표현할 수 있는 튜링 기계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독일 수학자 다비드 힐베르트는 수학에 모순이 없다는 완전성을 주장했다. 튜링은 이 주장을 반박하면서 컴퓨터의 기원이 된 튜링 기계를 생각하게 된다.]

지성도 계산할 수 있을까
기계라 하면 우리는 보통 철도 차단기나 자동차처럼 단순한 행동을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하는 장치를 떠올린다. 하지만 신경세포의 연결(시냅스), 세포의 단백질도 생물체 안에서 규칙에 따라 자동으로 어떤 일을 한다는 점에서 기계라고 볼 수 있다. 디아블로3 같은 컴퓨터 게임도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작동한다는 점에서는 기계다.

18세기 산업 혁명기에는 천을 짜는 방적기처럼 반복 작업을 대신해주는 기계가 활발히 만들어졌다. 1739년 프랑스의 발명가인 자크 드 보캉송이 만든 기계오리는 오리와 거의 비슷한 크기에, 오리처럼 음식을 먹고 소화시켜서 배변활동을 했다고 한다. 기계오리는 인간의 행동 또한 기계로 만들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어느새 사람들의 관심은 생각을 대신해 주는 기계로까지 옮겨갔다. 1820년대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가 차분기관을 만들었다. 마치 방직기가 육체노동을 대신하는 것처럼, 차분기관은 사람이 머리로 해야 했던 로그나 사인값의 근사값을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기계였다. 차분기관은 처음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작동하며 매우 복잡한 값을 자동으로 만들어 내고 계산할 수 있었다.

아마도 튜링은 각종 기계 장치들로 가득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알고리듬을 한 단계씩 수행할 수 있는 기계 장치인 튜링 기계를 생각해 냈을 것이다. 알고리듬 중에는 수학 기호를 다루는 것들이 많다. 이전에는 수학 기호를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계산을 해야 했다면, 튜
링 기계는 알고리듬을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형태로 저장할 수 있다.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튜링 기계를 들여다 보자. 튜링 기계는 현재 상태를 저장하는 ‘테이프’라는 기억장치와 기계가 상태를 바꾸는 규칙을 보관하는 ‘제어부’로 이뤄졌다. 만약 어떤 기계 또는 알고리듬이 잘 정해진 규칙을 따른다면, 그 기계의 상태를 테이프에 저장하고, 규칙을 제어부에 저장해 튜링 기계로 나타낼 수 있다. 이와 같은 튜링 기계를 모두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또 다른 튜링 기계는 ‘보편 튜링 기계’라 한다.

디아블로3 게임으로 설명해 보자. 게임 프로그램 역시 튜링 기계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컴퓨터는 보편 튜링 기계다.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파일은 튜링 기계의 설계도이며, 보편 튜링 기계인 컴퓨터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메모리에 올려 시뮬레이션해서 튜링 기계를 작동시킨다.

튜링 기계와 그것을 실행하는 보편 튜링 기계라는 구조는 헝가리 출신의 미국 수학자인 존 폰 노이만에 의해 현대의 컴퓨터를 만드는 근본 원리가 되었다. 앨런 튜링이 수학적으로 처음 만들어낸 보편 튜링 기계와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PC, 스마트폰 등 모든 컴퓨터는 동일한 능력을 가진 기계다. 그런 의미에서 앨런 튜링은 ‘컴퓨터의 아버지’이다.

튜링 기계가 모든 계산하는 기계를 표현할 수 있다면, 질문이 따라온다. 튜링기계로 우리 뇌를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의 생각도 튜링 기계가 표현할 수 있는 알고리듬의 결과물일까. 1파트에서 힐베르트가 제시한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모든 문장의 참 또는 거짓을 판별하는 궁극적인 기계가 있다면, 그 역시 튜링기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앨런 튜링은 튜링 기계로는 참, 거짓을 결정할 수 없지만, 인간은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보였다. 튜링의 증명에 따른다면 컴퓨터는 절대로 인간처럼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보캉송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기계 오리. 비슷한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동물이나 사람과 똑같은 자동 기계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가졌다.]
 

기계가 지성을 갖추려면 학습이 필요하다


글머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튜링은 1950년 논문에서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지 탐구했다. 인간은 확실히 1937년 논문에서 나온, 완벽하게 작동하는 튜링 기계와는 다르다. 인간은 언제나 실수를 저지르고, 동일한 문제에 대하여 다른 대답을 내놓거나,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튜링은 기계가 학습을 통해, 인간처럼 지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계가 외부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자라면서 지식을 배우고 추론하는 방법을 학습하면 지성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튜링이 제안했던, 생각하는 기계의 비밀은 ‘학습’이었다.

문제는 기계가 실제로 지성을 가진 존재가 됐는지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튜링은 ‘튜링 테스트’라는 흉내 게임을 제안했다. 평가자는 컴퓨터인지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로 참가자와 채팅으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은 뒤 어느 쪽이 사람이고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 알아맞힌다. 만약 특정 비율 이상으로 컴퓨터를 사람이라고 판단한다면 컴퓨터가 지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이후 인공지능이라는 학문의 중요한 목표가 된다. 지성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밖에 없으므로, 인간과 같은 행동을 지성의 목표로 삼는 것이다. 1991년부터 수상하기 시작한 뢰브너 상(www.loebner.net)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기계에 10만 달러와 진짜 금으로 된(올림픽 메달처럼 도금이 아닌!) 메달을 수여하기로 했다. 매년 열리는 대회에서 우승 상금인 2000달러를 가져간 참가자들은 있지만, 아직도 튜링 테스트를 완벽하게 통과한 10만 달러의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폰4s에 내장된 시리는 사용자가 질문을 던지면 대답하거나 적절한 검색 결과를 보여 준다. 얼핏 보면 사람의 질문을 듣고 이해하는 듯하지만 이는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작동하는 것뿐으로, 실제 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미래는 뇌에 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앨런 튜링의 질문은 현재진행형이다. 튜링을 필두로 한 20세기 중반의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오늘날 컴퓨터, 인공지능, 기계 학습과 같은 분야가 탄생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정확한 규칙을 알아낼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인간을 능가하고 있다. 이미 인간 체스 챔피언을 이겼으며, 퀴즈쇼에서 인간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아이폰의 시리는 말로 내린 명령을 알아듣고 답을 알려준다. 구글 자동차는 미국에서 무인 운전 자동차 면허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이미 지난 이야기가 됐지만 검색엔진이 최고의 답을 찾고 페이스북이 ‘나를 알 만한 친구’를 찾아주는 것도 인공지능 덕분이다.

그러나 이런 기계들은 여전히 인간이 너무나도 쉽게 푸는 많은 문제들을 풀 수 없다. 이들은 두발로 걸을 수도 없고, 사과 그림을 보면서 그것이 사과라는 것을 알아볼 수도 없다. 또 우리는 이들이 실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950년대부터 연구를 시작한 인공지능을 기호적 인공지능이라고 한다. 방식을 조금 깊게 알아보자. 먼저 개념과 개념 사이의 관계를 기호로 표현한다. 이어서 마치 수학 문제를 풀 듯이 규칙에 따라 기호를 조작해서 새로운 정보를 찾아낸다. 예를 들어 체스를 배우기 위해 체스의 규칙과 체스판의 현재 상태를 기호로 표현하고, 이러한 기호들을 조작해서 다음 상황을 얻어낸다. 튜링이 낳은 인공지능은 결국 수학의 바탕 위에서 발전한 것이다. 1980년대까지 기호적 인공지능은 각광을 받았다. 많은 연구자들이 적절한 기호의 표현 방법과 기호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에 비판에 부딪힌다. 단순한 기호만으로 인간의 인지 능력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반론이었다. 사람이 처음에 체스를 배울 때는 규칙을 배우고 다음 상황들을 하나하나 예측하는 방법으로 사고할 것이다. 그러나 체스 고수는 체스판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다음의 좋은 수가 무엇인지 ‘그냥’ 알 수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기호식 인공지능을 ‘좋은 구식 인공 지능(GOFAI)’이라 부르며 기호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인공 지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인공신경망을 통한 기계 학습에 대한 연구가 그 예이다. 인공신경망의 각 세포들은 입력된 정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대신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동하며 다른 세포로 정보를 전달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가장 맞는 답을 찾는다. 잘 학습된 인공신경망은 기존 인공지능이 엄두도 못냈던, 얼굴이나 패턴 인식에 쓸 수 있다. 초기에는 큰 인공신경망을 만들면 인간의 행동을 모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올바른 구조 없이 단순히 신경망의 크기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현재의 인공지능은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방법들을 혼용하고 있다.

완전한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과학자들은 아예 사람의 뇌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고자 한다(과학동아 3월호 특집기사 ‘인공 뇌’ 참조). 뇌 전체의 일반적인 작동 알고리듬을 알아내고, 그것을 통해 기계를 학습시키려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뇌세포라는 기계에서 지성이 만들어지는 작동 알고리듬을 알아내고자 한다.


[사람은 체스판의 현황을 보고 판세와 다음에 어떤 수를 둬야 할지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면이 강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모든 수와 상황을 계산하려 한다.]

 
[사이언스’가 튜링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4월 13일자 표지로 쓴 튜링 패턴. 이 패턴은 자연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130쪽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 참조).]

뇌는 세상을 보며 끝없이 가설을 만든다.


필자는 뇌가 ‘예측적 부호화’라는 방법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가설의 내용은 이렇다. 뇌는 끊임없이 관찰할 세상에 대한 가설을 만들어서 세상을 인지하고 행동한다. 가설과 실제로 관찰된 것과의 차이를 이용해 더 나은 가설을 만든다. 뇌는 이와 같은 알고리듬을 이용해 세상을 경험하면서 생각하는 방법을 만들어 간다.

필자는 이러한 뇌의 작동 기작을 신경 로봇공학 또는 발생학적 로봇공학이라고 부르는 방법을 통해 로봇에 이식하려 한다. 이 로봇에게 세상을 경험하도록 만들어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진 기계를 만들고자 한다. 이것은 앨런 튜링이 제안한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방법과 아이디어가 같다.

튜링의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전망은 21세기에 뇌과학과 컴퓨터의 발달을 통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학습하는 인공지능은 인간만큼 학습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 학습을 끝낸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면 복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쓰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학습 기계가 어느 날 자신의 인권을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는 스스로 생명임을 주장하며 망명을 신청하는 인공지능이 나온다. 이러한 기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앨런 튜링 자신은 이러한 인공지능을 생각할 수 있는 동료로 공손하게 맞이했을 것이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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