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수학 교사와 학부모, 수학 전공 대학교수, 각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수학교육개선위원회'가 출범했다. 교육부가 만든 이 위원회는 현재 각급 학교에서 이뤄지는 수학 교육의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교육열과 교사능력을 칭찬하고 실지 PISA(국제학력평가시험)에 나타나는 한국 학생의 수학 성적은 매우 높다. 그런데 우리 수학 교육에 무슨 문제가 있기에 이런 위원회까지 만드는 것일까?
한국 수학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시험에만 대비하는 운전면허를 위한 것과 다름없고 호기심과 창의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공교육의 황폐화, 즐비한 학원, 획일화된 수업내용, 엄청난 사교육비, 심지어 교육방송에서조차 시험기술 위주의 수업을 등장시키고 수험 산업은 날로 번창하고 있다. 수학 교육은 지식 전수 이상의 철학을 요청하는데, 그레셤의 법칙은 어김없이 작동되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내는 격으로 사명의식을 갖는 교사의 입지는 점차 좁아져 간다.
오늘날 수학은 희랍전통을 이어 온 서구문명의 소산이며 한국의 전통적 가치와는 다르다. 서구의 학문관은 대수(對數·logarithm)를 비롯하여 학문 이름의 끝에 희랍어 logos(논리)를 붙이는 데서 잘 나타난다. 전문영역은 달라도 로고스만은 모든 학문의 공통이며 수학은 로고스의 체계이다. 반면 한국에서 배움은 선생의 지식을 베끼고 기억하는 것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통계가 있다. 2010년도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과학자의 지표인 HCR(Highly Cited Researcher) 6300명의 나라별 순위는 미국이 4099명, 영국 481명, 일본 261명, 독일 259명인데, 한국은 겨우 4명으로 미국의 1000분의 1, 일본의 65분의 1이다. 대부분의 노벨상과 필즈상 수상자는 이들 가운데서 배출된다. 매년 노벨상과 필즈상 수상자가 10명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인이 수상자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는 우리나라 수학 교육의 질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수학 교육은 전문 수학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의 공통언어로서 수학을 즐기고 합리적 사유형식을 익히는 일이다. 인문사회학의 수학과 이공계의 수학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로고스가 결여되고 문화와 수학의 관계를 무시한 수학 교육의 결과는 암담한 현실, 즉 지적 공동체가 없는 명문대학, 세계적인 기여가 미미한 과학수준, 걸핏하면 폭력이 등장하는 국회, 지식인 사이의 집단적 항의 등으로 나타난다.
수학에는 국경이 없다. 하지만 수학 교육에는 국경이 있다. 가령 '0'이나 '크기가 없는 (이데아적) 점'은 각각 인도와 희랍에서 발견되어 수학사에서는 국적이 거론될 수 있으나 이들은 모두 하나의 수학 속에 정합적으로 공존한다. 그러나 수학 교육에는 교육목적과 학습법 등 가치의 문제가 개입한다.
우리 교육은 조선시대의 학문적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인내심에 의존하는 한석봉 어머니식 교육법과 세속적 출세를 위한 이도령의 가치관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이제 수학 교육의 눈높이는 국가적 문화 향상과 보편적 가치에 맞춰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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