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5일 수요일

수학자 - 가우스

(1) 가우스의 생애

"과학의 여왕은 수학이고, 수학의 여왕은 수론이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다름 아닌 카알 프리디리히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입니다. 그는 1777년 4월 30일 독일의 브라운슈바이크의 가난한 석공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아르키메데스와 뉴튼과 함께 인류가 낳은 '수학의 3대 거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데 어려서부터 불가사의할 정도로 계산에 통달하여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보통의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거의 암산으로 척척해내어 어른들을 경탄케 하였습니다.

(2) 가우스의 계산법

가우스의 계산력과 관련된 많은 일화들이 있는데 가우스가 세 살 때의 일입니다. 가우스의 아버지는 석공들을 거느리고 석공업을 하였는데 일 주일에 한 번씩 임금을 지불했습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임금을 계산하고 있 는데 가우스가 "아버지, 계산이 틀려요."하고 잘못을 지적했다고 합니다.


또한 일곱 살 때에는 학교 담임 선생님이 산수 시간에 학급 전체 아동에게 빠른 계산연습 문제로서 다음과 같이 칠판에 썼습니다.
「 1에서 40까지의 합을 될 수 있는대로 빨리 계산하여라. 」 선생님은 어린 학생들이 적어도 2, 30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해서 문제를 낸 것인데 학급의 한 구석에 있던 가우스는 선생님의 질문이 끝나자 즉석에서 손을 들고 "선생님, 그것은 820 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럼 어린 가우스는 어떻게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을까요? 가우스의 풀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2+ 3+ 4+ … +40
40+39+38+37+ … + 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1+41+41+41+ … +4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41×40÷2 〓 820



이것은 오늘날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등차수열의 합을 이용한 방법인데 어린 가우스는 이미 수의 규칙성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쉽게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3) 가우스의 업적

하지만 가우스가 계산에만 능통했던 것은 아닙니다. 가우스는 뉴튼 등과 마찬가지로 여러 분야의 천재였는데 12세가 되면서부터 기하학에 눈을 뜨고 15세부터는 정수론의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가우스의 가정은 그다지 유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가우스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아들을 상급 학교에 보내기를 주저하였습니다. 그 때 브라운슈바이크의 군주 페르디난트 대공이 가우스의 재능을 인정하여 괴팅겐 대학에 입학시켜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평생을 수학 연구에 전념할 것인가하는 결심이 서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평생동안 수학을 연구하도록 결정짓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17각형"을 자와 컴퍼스만 사용하여 작도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정3각형, 정4각형, 정5각형, 정15각형 및 그것의 변의 수를 차례로 2배, 4배, 8배와 같이 짝수배로 되는 것만 작도할 수 있고 정17각형과 같은 것은 작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것은 유클리드 이래 2000년 동안 누구도 해낼 수 없는 대발견이었으며, 가우스에게 큰 자신감을 주고 그가 앞으로 가야할 길을 결정해 준 큰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연구를 거듭하여 수학사에 길이 남을 많은 연구를 한 가우스는 30살에 이미 수학에 싫증을 느꼈습니다. 너무나 수학을 잘 하고 많은 연구를 하다보니 수학이 싱거워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괴팅겐 천문대의 대장이 되어 그는 천문학에 대해서도 많은 훌륭한 발견을 남겼습니다.

가우스의 업적을 서술해 간다면 수없이 많지만 어느 것이든 전문적이어서 여기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가우스의 과학적인 냉철함과 개인적인 야심으로부터의 초월성은 그를 위대하게 만든 원천입니다. 그의 야심이라면 오로지 수학의 진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우스는 일단 연구과제를 잡으면 여기에 몰입하여 철두철미하게 또 어떤 때는 쉬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완전한 결론을 얻어 자신이 만족하고 있는 것 이외에는 어느 하나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전에 그가 발표한 논문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우스가 1855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후 발결된 그의 일기에는 수많은 가족들이 있었고 중요한 연구 자료가 쏟아져 나와 수학 사상 귀중한 문헌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일기는 그의 친구들과 제자들에 의해 「가우스 전집」으로 발행되고 있어 가우스의 업적은 그가 죽은 뒤에도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가우스는 죽음에 임하여 자신이 발견한 정17각형을 묘석에 새겨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 그 묘석은 브라운슈바이크에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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