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일 토요일

無 에서 무한의 과학으로 제로의 DNA를 찾아서

철학과 함께 출발한 수학은 다른 과학과 동떨어진 채 홀로서기만을 고집하는 은둔의 과학이 아니다. 인류의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했다. 최근 컴퓨터 연산법칙인 알고리즘(algorism)은 아라비아 계산법에서 나온 수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 속에 제로의 역할은 막대하다. 21세기의 화두는 창의성이다. 모방만으로는 경쟁력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기초과학의 산실인 고등과학원(KIAS)과 공동으로 제로의 기원과 역사 등 이에 얽힌 미스터리를 이야기로 풀어보는 ‘제로의 DNA를 찾아서’를 기획했다. [편집자 註]
“무(無)라, 무(無)라, 모든 게 무(無)라…….”

1966년 10월15일, 평생 ‘無’자 하나를 화두로 삼고 정진해 왔던 선승 효봉(曉峰)이 굴리는 염주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그는 앉은 채로 세상을 떴다. 불교 용어로는좌탈입망(座脫立亡)이라 한다.

왜 갑자기 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불교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판사라는 직위를 헌신짝처럼 걷어차고 유유히 흐르는 구름의 길을 걸었던 운수행각(雲水行脚)의 수도승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無와 제로의 관계는?
요점은 그가 평생 화두로 삼고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없다’는 뜻의 무(無)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역시 ‘없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제로(0)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그러면 출가해서 이승을 떠날 때까지 효봉의 마음 속에서 늘 함께했던 무(無)는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세상만사가 모두 덧없다는 ‘허무의 무’를 생각했을까? 아니면 비슷한 내용으로 ‘인생무상의 무’를 생각한 것일까?

또 아니면 원래 우주는 나고 죽는 것이 없고, 더함(plus)도 덜함(minus)도 없는 무 그 자체였다는 아주 어려운 철학적 사변을 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효봉의 경우만이 아니다. ‘無’자는 옛날부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는 불제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화두다. 그러면 ‘無’자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제로의 속성을 잘 알 수 있을까?

우주를 가리키는 허공은 10의 마이너스 20승
고등과학원 초대원장을 지낸 김정욱 명예교수가 지난해 고등과학원을 찾은 청소년들에게 <동양의 십진법>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는강의에서 우리가 일상생활에 쓰고 있는 말 중,수와 관련된 단어들 속에 담겨 있는 수학적 의미를 풀어내커다란 갈채를 받았다.

예를 들어 작은 수로 찰나(刹那)라는 단어가 있다. 또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애매모호하다는 말 중에모호(模糊)라는 단어가 있다. 하늘, 또는 우주를 가리켜 허공(虛空)이라고 하기도 한다. 모두가 수에서 유래된 단어들이다.

▲ 고등과학원 초대원장을 지낸 김정욱 물리학부 명예교수
김 교수에 따르면 찰나는 10의 마이너스 18승이다. 모호와 허공은 각각 10의 마이너스 13승과 마이너스 20승이다.

찰나와 모호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왜 거대한 하늘을 뜻하는 허공이 아주 작은 수 10의 마이너스 20이 되는 걸까? 아마 허공은 하늘의 개념보다 먼지나 티끌이 없는 깨끗함을 상징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김 교수는 허공보다 더 작은 수로 청정(淸淨)을 소개했다. 청정은 10의 마이너스 21승이다. 아무리 깨끗하다 해도 미세한 먼지, 더러움이란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이해가 간다.

무량수는 10의 128승
그렇다면 청정보다 더한, 그야말로 먼지 제로의 단어는 무엇일까? 청정을 좀더 강조하는 청정무구(淸淨無垢)? 아마 그러한 인간세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단어는 없다.

<동양의 십진법> 이야기를조금만 더 계속하자. 김 교수는 강의에서 다시 큰 수를 나타내는 단어들을 열거했다. 인도 갠지스 강의 수 많은 모래알을 뜻하는 항하사(恒河沙)는 10의 56승이다.

재미 있는 것은 불가사의(不可思議)다.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는 오묘한 이치라는 말로, 미스터리를 뜻하는 이 단어는 10의 80승, 또는 10의 120승이다. 엄청나게 큰 수다. 이 정도면 천문학적 수치의 개념을 넘어 영원한 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수가 있다. 바로 무량수(無量數)다. 이 수는 10의 88승, 또는 10의 128승이다.

물론 아라비아 수의 탄생지이자 대수학이 발달했던 인도의 불교에서는 이보다 더 큰 수들이 무수히 많다.

일상생활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지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불가량(不可量),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불가설(不可說)도 있다.

그런데 한번 곰곰이 따져보자. 아주 긴 시간을 뜻하는 겁(劫)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 영겁(永劫)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또 수십억 광년이라는 시간과 수백억 광년, 그리고 수천억 광년이라는 시간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인간의 마음과 상상력 속에서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광활한 우주를 상대로 할 때도 당연히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제로다.

한량 없는 크기의 무량수는 결국 제로?
▲ 제로 속에는 인간의 무한한 상력과 호기심, 그리고 철학적 사변이 녹아 있다. 또한 창의성이 숨어 있다.
무량수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우리가 쓰는 한자에서 부정(negative)의 의미를 가진 ‘아니다’라는 불(不)이나, 없다라는 의미의 무(無)가 접두사로 붙으면 금새 부정에서 반전해 엄청난 긍정(positive)으로 바뀌기도 한다. 바로 한자의 묘미이다.

무량수의 무량(無量)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의미라는 데에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사고의 지평을 더 넓혀보자. 약간 엉뚱한 해석과 함께 말이다.

무량을 무설탕, 무식, 무지, 무해, 무소식, 무소유……. 이런 말과 비교하면 무량은 양이 없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서 무량수란 양이 없는 수다. 크기가 없는 수라는 의미다.

그렇게 본다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인 무량수는 아무 것도 없는 수가 돼버린다. 다시 말해서 무량수는 우리가 그 DNA를 해부해보려는 제로와 일치해버린다. 사족을 다시 달자면 무한은 바로 제로가 돼버리고 제로는 다시 무한이 돼버린다.

비약이 너무 심하게 느껴지거나,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잡힐 듯 말 듯한 신기루와 같은 제로를 해부하는 여행을 떠나려면 이 정도의 논리비약, 엉뚱한 상상력은 당연히 무장해야 될 필수도구라고 생각된다.

새로운 사고와 함께 상상의 지평을 넓혀야만 제로사냥에서 성공할 수가 있다. 또한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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