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5일 수요일

수학·과학 영재와 수학능력시험


A학생은 중학교시절 오로지 과학고 진학만을 목표로 수학과 과학을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다. 이미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수학과 과학 모든 과정을 마쳤다. 그 만큼 공부했는데도 과학고에 낙방해 어쩔 수 없이 집 근처에 있는 일반고에 진학했다. 대부분의 일반고는 1학년 때 과학 4단위, 수학 4단위만 배우고 나머지는 국어나 영어, 국사, 사회 등 대부분 암기 과목이며 인문계 과목이다. 수학과 과학은 단연 돋보여 늘 전교 톱을 했으나 국어와 사회 과목은 중상위권을 맴돌았다. 중학교 시절 독서를 많이 못해 독해력도 약했고, 사회 과목은 기초실력도 약한데다 외우는 것을 싫어해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없었다. 일반고에도 특목고나 자율형 사립고 진학에 실패한 후 배정 받아 온 내신 귀재들이 많이 있다. 좋은 내신 성적을 유지하기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수리 ‘가’형과 과학 1등급으로 연세대 합격

A학생은 2학년으로 진급할 때 자연계열을 선택했다. 일주일에 수학이 9시간, 과학이 8시간이었다. 그러나 2학년 전체 15개 반 중 자연계열은 5개 반으로, 전체 인원이 200여 명 밖에 되지 않았다. 1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8등 안에 들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만만치 않아서 좋은 내신 성적을 받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한 수학과 과학은 늘 1~2등급을 받았고, 학급 석차는 6~7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3학년이 된 후 발목을 잡은 것은 수능 언어(국어)영역과 외국어(영어)영역이었다. 중학교 때 독해력을 키우지 못한 것이 수능 언어뿐만 아니라 외국어까지 영향을 미쳤다. 죽어라 공부해도 언어는 3등급, 외국어는 2등급에서 딱 머물러 있었다. 9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는 1교시 언어에 시달려 잘하던 수학까지도 흔들려 실수 연발하고 말았다! 수리 (가)형에서 난생 처음 3등급을 받기도 했다. 정시모집에서 건국대 중하위권 학과에 간신히 합격할 정도의 성적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수능 공부에 집중했다. 수시모집에서는 자연계 논술을 치르는 연세대와 고려대, 성균관대에 지원했다. 9월 모의평가 성적보다 세 단계 정도 상향 지원한 것이다. 10월 중순에 있었던 연세대 논술 시험에서는 수학은 어느 정도 풀었는데 과학은 좀 어렵게 풀었다.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역시 언어는 3등급, 수리 (가)는 만점, 과학탐구 2개 과목도 만점, 외국어 3등급을 받았다. 9월에 비해 상당히 잘 봤는데도 총점은 513점으로 성균관대나 중앙대 중위권 학과에 간신히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수능 시험 후 11월 중순에 고려대와 성균관대 논술 고사를 봤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험이라면서 우울해 했다.

12월 초 수시 합격자 발표. A학생은 연세대를 포함해 세 개 대학에 모두 합격했다. 내신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고, 수능 성적도 연세대나 고려대는 꿈도 못 꿀 점수였다. 그러나 당당하게 합격했다. 바로 수능 우선선발 때문이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수리 (가)와 과탐 2개 과목 1등급인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우선선발을 한다. 연세대는 모집 인원의 70%를, 고려대학은 모집인원의 60%를 선발한다. 이 기준을 넘기는 수험생들이 전국적으로 3000여 명 밖에 되지 않고, 이들의 상당수는 의예과에 지원한다. 따라서 연세대나 고려대 공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다. 논술시험을 좀 망쳤다 해도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

과학동아 독자들 중에는 과학고를 목표로 하는 중학생들, 과학고 재학생들, 자연계 상위권 학생들이 많다. 이들은 수학은 잘하는데 과학을 못하는 학생, 과학은 잘하는데 수학을 못하는 학생, 수학과 과학은 좋은 성적인데 국어와 영어는 신통치 않은 학생 등 다양한 성적 구조를 갖고 있다. 대학입시와 딱히 연결이 되지 않아서 고민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대입 전형 방법 역시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에 나에게 딱 맞는 전형 유형도 어딘가에 숨어 있다. 미리 자신에게 유리한 전형유형을 찾아보고 그 방향에 맞게 준비해야 합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것을 ‘선택과 집중’이라고 하는 것이다. A학생이 성공한 것도 상위권대 자연계 일반전형(논술)의 우선선발을 선택했고, 수학과 과학에 집중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수능 준비 없이 대학 간다!
수능은 일반고의 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출제된다. 따라서 특목고나 특성화고는 수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들 고등학교에서도 수능과목을 가르치지만 전문교과 80단위를 이수해야 한다. 전문교과는 수능과 상관이 없기때문에 수능시험을 대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대학입시에서 수능 성적을 일체 반영하지 않는 전형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울대 자연계 일반전형이다. 서울대는 수시 모집에서 모집 정원의 80%를 선발하는데 일반전형으로 1744명,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752명을 선발한다. 일반전형은 단계별전형으로 1단계에서 서류전형으로 1.5~3배수를 선발한 후, 2단계에서 서류전형(50)+면접구술(50)을 반영해 최종 선발하는데, 의예과를 제외한 자연계열은 수능 성적을 일체 반영하지 않는다(단, 수능시험에는 반드시 응시해야 함).

서울대가 수능 점수를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 분야에 우수한 영재들이 전공분야 연구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사실 과학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수능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없다. 일반적으로 수학이나 과학, 정보 국제 올림피아드에 출전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중학교 3학년 정도부터는 그 중 특정분야에 집중한다. 고등학교 1학년 시기에 일단 통신교육이나 집체 교육 대상자가 된다 해도 고 2, 3학년 때 국제올림피아드 한국 대표가 되고,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입상하기까지는 정말 험난하고 먼 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을 국어나 수학, 영어 등 수능과목으로 발목을 잡아 놓으면 국제대회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필자가 아는 한 학생은 국제정보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았고, 오스트리아 인스브르크대학에서 주관한 세계 컴퓨터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이었다. 이 학생은 2005년 수시전형에서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러나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채우지 못해 최종적으로 낙방했다. 결국 이 학생은 외국 유수 대학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길에 올랐다.

또 다른 학생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 대표였으며,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할 정도로 수학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2008학년도 수능을 치렀는데, 수리 (가)형의 시험문제가 너무 쉽게 출제돼 2점 문제 한 문항만 틀려도 2등급으로 밀려날 정도였다. 늘 어려운 문제만 풀던 이 학생은 쉬운 문제에 적응이 되지 않아 이 시험에서 3등급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어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며 수능시험을 탓했다. 이 학생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수능은 일반 학생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보편적 시험이다. 특정 분야에 뛰어난 학생들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대는 이러한 점을 감안해 특정 분야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학생이라면 수능 성적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서울대에 지원할 정도의 학생이라면 수능 정도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역균형선발전형에서도 수능에 의한 최저 학력 기준은 2개 영역 2등급으로 중위권 대학의 최저기준에 불과하다.

이 외에 수능 성적을 무시하는 전형으로, 고려대 특별전형(과학), 서강대 알바트로스인재, 성균관대 특별전형(자연), 연세대 과학인재 전형, 중앙대 과학인재 전형, 한양대 우수과학인 전형 등이 있다. 이들 전형의 주목적은 과학고 출신자, 올림피아드 수상자, 과학/수학 영재코스 이수자 등을 유치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 심취해 있고, 수상 실적이나 활동 실적이 뛰어나다면 수능 성적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의대 목표! 수능을 무시하지 마라!

자연계 수험생 중 많은 수험생들은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의대 진학이 목표인 학생들은 일단 과학고나 영재학교 진학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물론 영재학교나 과학고 출신자들도 상당수가 의대로 진학하고 있지만, 현재 대입 전형만 놓고 보면 유리할 것이 별로 없다. 정부에서 영재고나 과학고를 설립·운영하는 목적이 기초 과학 영재의 육성이기 때문에 학교 입장에서도 의대 진학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기가 힘들다. 특히 의대 쪽으로 우수학생이 편중되고 있는 현실을 정부와 학계에서는 매우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등 상위 3개 의대를 목표로 하는 중3 학생들은 일반고나 자율고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의대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학생부 성적, 수능 성적, 자연계 논술 실력, 비교과 성적까지 완벽해야 합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과학고나 영재학교로 진학하면 학생부 성적을 잘 받기 어렵고, 학교에서 수능을 준비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으며, 수상 경력을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일반고에 진학하면, 전교권 성적을 유지하면서 내신 성적을 1.5등급 이내로 유지할 수 있고, 수능 준비도 할 수 있다. 학교 대표로 경시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며, 각종 시상에 추천을 받아 수상 실적 관리도 수월하게 된다. 학생부, 수능, 비교과 등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의예과의 경우 2013학년도 선발인원은 95명이다. 이중 지역균형선발전형으로 28명, 일반전형으로 47명, 정시전형으로 20명, 기회균형전형으로 6명을 선발한다. 연세대 의예과는 2013학년도에 77명을 선발하는데, 수시에서 58명, 정시에서 19명을 선발한다. 수시에서 학생부 성적이 중요한 학교생활우수자전형으로 11명을 선발하고, 논술 시험 성적이 중요한 일반전형으로 22명을 선발하며, 과학고나 영재고 출신자에게 유리한 과학인재 전형으로 21명을 선발한다. 고려대 의과대학 정원은 74명인데, 수시모집에서 일반전형(논술) 28명, 학교장추천전형(학생부성적 중심) 14명, 특별전형(과학) 13명, 기타 전형 9명 등 54명을 선발하고 나머지 20명은 정시모집에서 선발한다. 성균관대 의예과는 28명을 모집하는데 수시에서 일반전형에서 5명, 특기자(자연계)에서 5명 등 10명을 모집하고, 정시 모집에서 18명을 모집한다.
서울대 일반전형 47명, 연세대 과학인재 21명, 고려대 특별전형 13명, 성균관대 특기자 5명 등 86명은 수능과 관계없이 선발하는데, 주 타깃이 과학고와 영재고 출신자다. 일반고 올림피아드 출전자와 경시대회 상위 입상자, 수학·과학 내신 성적 우수자가 합격하기도 한다.

<표 2> 는 상위권 대학 의예과 수능 최저학력기준이다. 최소한 수능 2000등 내에 들어야 합격할 수 있다. 수능 점수가 충분히 잘 나와도 서울대와 연세대 의예과는 완전히 운으로 결정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같은 학생이 수시모집에서 서울대 의예과에 합격했는데 연세대 의예과에는 떨어지기도 한다. 정시모집에서도 서울대와 연세대의 합격선 차이가 거의 없다. 수능이 매우 어렵게 출제될 경우에나 합격선이 2~3점 정도 벌어진다. 그러나 수능에서 2~3점은 실력차가 아니라 누가 실수를 했느냐 차이에 불과하다. 과학고나 영재고 출신자라 해도 수능을 무시하고는 의예과에 합격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의예과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누구도 합격을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시모집까지 고려해서 전략을 짜야 한다. 정시전형에서 가장 중요한 전형요소는 수능 총점이다. 의예과를 목표로 한다면 수능 공부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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